2023: Risk-Aversive
행운은 있어도 기적은 없었다
데이터사이언스학부로의 전과를 빼놓고는 2023년에 대해 논할 수가 없고, 그것은 여러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애초에 다중전공을 결재받았다면 전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마침 나에게는 여름학기에 챙겨둔 미분적분학1 A+ 학점이 있었고, 마침 전과 몇 달 전 온드림스쿨 지원을 하며 겨울학기 신청을 하지 않아 약 3주간 전과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말도 안되는 우연의 연속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운만 좋아서는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느낀다. 미적분은 입학 직후부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이 보내준 강의자료를 조금씩 봐가면서 만들어낸 결과였고, 어떤 이유로든 전체 학점은 열심히 관리해둔 상태였다. 아무 정보도 없는 첫 전과 선발에서 소신껏 준비해갔던 내용의 일부는 올해 수강한 몇몇 과목들의 과제 내용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노력했던 방향이 어느정도는 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목표하던 다중전공 신청이 반려당하고 맞이한 1학년 2학기 종강 이후의 기간은 입학 후 가장 막막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전과 제도가 눈에 들어왔고, 새해의 첫 한 달은 전과가 아니면 다른 길은 없으니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보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들을 최대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한 결과 많은 행운이 겹쳐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앞으로 나에게 언제 어떤 운이 또 따라줄지는 모를 일이지만,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운도 따른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을 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박웅현. (2013). 여덟 단어. 북하우스.
Work super hard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려운 내용을 공부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내가 태어나서 작년까지 공부한 모든 것보다 올해에 공부한 총량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올해만큼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공부를 할수록 멍청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경제금융학부 전공 과목 2개가 포함된 2학기에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 한 번은 3일 내내 밤 시간만 되면 도서관에서 불확실성, 요소시장, 보험을 거의 울면서 공부하며 겨우 미시경제2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쯤되니 공부를 제대로 한다면 한시라도 여유가 있는 게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론 머스크가 “Work super hard”라고 말한 것처럼 깨어있는 시간 내내 공부만 해도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나마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빡세게) 교육과정을 굴리면 모르겠는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많이 공부하는 것밖에 답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시경제2를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 학기말에는 인지과학기초 리포트에 정보경제학 내용을 접목시켜 작성했는데, 그 리포트는 당시 알고 있는 지식들 내에서 내가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참신한 아이디어를 낸 최선의 결과물이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결과물을 하나라도 내봤음에 다행이라고 느낀다. 보통은 어떤 과제든 무언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상태로 제출하게 되니까. 앞으로도 더 work super hard 해서 이런 경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수면은 affirmative하게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하룻밤 정도는 새가면서 무언가를 해도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1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밤새 공업수학 내용을 보기 위해 3열람실에 앉아있을 때, 새벽 1시가 지나갈 쯤 정말 말도 안되게 잠이 오는 걸 경험하고 나서는, 굳이 졸리지 않더라도 매일 잠을 조금씩이라도 자는 걸로 생활 습관을 바꿨다.
처음에는 그 때의 경험때문에 ‘새벽엔 잠이 갑자기 올 수 있으니까’ 그렇게 했는데, 2학기가 되고 미시경제에 나오는 불확실성 하의 선택(Choice under uncertainty) 부분을 본 이후로는 그래야 할 이유를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잠을 자는 것은 그 이후의 시간 내에서 잠이 올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고, 그로써 더 확실히 그 시간을 계획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즉 굳이 졸리지 않아도 잠을 주기적으로 자는 것은 마치 무위험선(Certainty line)으로 이동하려는 노력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시간 운용에 있어서는 그렇게 Uncertainty를 줄이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잠은 주기적으로 자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장 작년 2학기에는 밤새 두 과목의 기말고사를 준비하다가 잠들어서 아침 9시에 있는 시험을 못볼 뻔 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Uncertainty line을 벗어나고 몸을 갈아넣으면서 전념을 다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Uncertainty line 근처에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사업자가 된 첫 해, 또 실감의 두 번째 해를 지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